관상학觀相學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기준이 있다. 당나라 관리 등용 기준이었다. 관리를 뽑을 때 첫 번째 기준은 신身, 즉 비주얼이다. 당나라 시대부터 중국인들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첫인상·외관·신뢰감이라고 생각했다. 머리에 든 것보다 보이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중국인다운 현실주의적 판단이다.
관리가 자신의 권위를 몸에서 입으로, 즉 말을 꺼내기 전에 모습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권위를 가지기 힘들다는 점에서 신, 즉 외모는 중요하다. 그 다음이 말言을 잘하고, 글書을 잘 쓰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판단력判이다. 중국인들의 뒤집기 한판인 셈이다. 처음에는 신이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판단력이라는 뜻이다.
판에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있다. 이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인, 어떤 현상을 인간적인 직관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다. 사판은 현실적인,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고려해서, 형이하학 形而下學 적인 경험론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판단(사판)과 이론적인 판단(이판)을 다 했으니, '난 무조건 한다'가 이판사판理判事判이다.
자, 그럼 명리학으로 자신의 삶을 분석할 때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중요한 건 글자 그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속세 명리학이 지금 미신迷信과 잡설雜說로 전락한 이유는 바로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천간,지지의 조합인 육십갑자의 글자만 가지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이는 현실적인 상황을 살피는 사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명리학 이론만 보고 판단하는 이판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거쳐 만들어진 명리학은 절대 불변의 학문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 모든 패러다임도 이동한다. 명리학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이 시대의 환경에 맞는 사판의 체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판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인문·사회과학이다. 이 사판을 쉼 없이 단련시킨 후에야 비로소 이판을 제대로 결합시킬 수 있고, 그래야만 진정한 명리학이 완성된다.
<출처: 『명리, 운명을 읽다』, 강헌 지음, 돌베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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