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주역을 점서占書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주역은 과연 점서인가? 점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우주변화의 원리를 설명한 서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인생의 지혜를 담아놓은 지혜의 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주역은 이 중에서 어느 것에 속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세 가지가 다 옳은 이야기다. 주역에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요소가 다 들어 있다. 주역은 점서이기도 하고, 우주변화의 진리를 설명해 놓은 책이기도 하며, 인생의 지혜를 담아놓은 책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 요소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주역은 삶의 지혜를 우주변화의 원리를 근거로 점을 쳐서 찾아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역에서 말하는 점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운명감정과는 다르다. 운명감정은 대체로 운명을 점쳐서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데 특징이 있다. 이와 달리 주역에서 말하는 점은 하늘의 뜻을 묻는 데 있다. 점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divination과 fortunetelling의 두 가지 뜻이 나온다. dividation은 신에게 물어서 해답을 구하는 신탁을 말하고, fortunetelling은 운명감정을 말한다. 주역에서 말하는 점은 fortunetelling이 아니라 divination이다.
식물은 때가 되면 꽃과 향기를 피우며 꿀을 생산한다.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움직임을 계속하려고 하고, 정지해 있는 모든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고 한다. 공기보다 무거운 물건은 아래로 낙하한다. 이 세상은 이렇게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만물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기이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들의 움직임은 자연에 맡긴 결과다. 그들의 움직임은 자연이다.
사람은 완전한 능력을 가진 존재이다. 사람은 무생물의 요소와 식물의 요소, 그리고 동물의 요소를 최고의 상태에서 모두 가지고 있는 종합적인 존재이다. 사람의 몸은 우수한 물체이기 때문에 우수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 이 감각기관의 작용을 통하여 사람들은 구별능력을 가지게 되고 구별할 수 있는 의식세계를 만들어 낸다. 일단 의식세계를 만들어 내면 사람들은 감각하는 주체, 즉 보는 주체, 듣는 주체, 말하는 주체로서의 주체의식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주체의식이 '나'라고 하는 자아의식으로 변환된다.
'나'라고 하는 의식이 형성되기 전의 나의 몸은 하나의 자연물이었다. 그러나 '나'라고 하는 의식이 형성되면, 자연 그 자체이던 '몸'이 '나'로 바뀐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라고, '내'가 숨쉬고 '내'가 자며, '내'가 보고 '내'가 듣는 것으로 의식하게 된다.
사람이 의식을 가지고 '나'라는 주체를 만들어 내면 바로 '너'와 '그'가 생기고 만물이 각각 생겨난다. 그리하여 '나'는 '남'과 대립하고 경쟁하게 된다. 인간이 경쟁적인 삶을 영위한 결과 인간들은 타인과 자연을 이용하게 되었고, 과학을 발달시켜 문명을 이룩하였으며, 안락하고 편리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인간은 더욱 경쟁적이고 분별적인 삶에 매몰되면서 본래의 자연적 삶을 상실하게 되었다. 분별적 삶의 부분을 의식세계라고 본다면, 상실한 부분의 삶을 의식에 지배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무의식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경쟁적이고 분별적인 삶을 택한 것일까? '나'라는 개념이 생기면 바로 '너'라는 개념이 생기고 '그'라는 개념이 생겨 경쟁체제로 돌입하지 않을 수 없다. 눈앞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말면 그 즉시 삶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쟁적인 삶을 지속하다 보면 우선은 삶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결국 불행과 파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성인聖人은 의식과 분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인은 자연적 삶을 상실하고 파멸로 치닫는 인간과 사회를 보면 불쌍한 느낌을 갖고 인류와 사회를 구제하기 위해 고심한다. 그리하여 성인은 그 구체적인 방안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성인이 제시한 방법 중에서 가장 적극적인 것은 의식세계와 본래세계의 벽을 허물도록 인간을 인도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 취한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 바로 주역의 제작이다.
주역에서는 어떠한 원리로 사람의 의식세계와 본래세계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무는 것일까? 경쟁에 뛰어드는 사람일수록 경쟁심이 가득하다. 경쟁심은 욕심이다. 욕심이 가득한 사람에게는 자연에서 오는 신비한 소리가 차단된다. 그러한 사람은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곳이면 위험한 장소라도 찾아간다. 무너지는 건물에 가서 깔려 죽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사람의 본래세계에서는 신비의 힘으로 거기에 가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왠지 께름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까닭은 의식세계와 본래세계의 벽이 100퍼센트 차단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주역 점을 쳐서 괘를 뽑으면, '가지 말라'는 지시가 나올 것이다. 주역 점에서 나오는 괘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의 본래세계 속에 있는 무한한 신비의 힘이 의식세계에 있는 자기에게 깨우쳐 주는 메시지이다. 이 경우 가고자 하는 욕심을 억제하고 메시지를 따른다면 그 부분은 의식세계와 본래세계의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위험한 장소에 가지 않는 행위는 의식세계에서 행해진 것이지만, 그 지시는 본래세계에서 내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는 본래세계에 바탕을 두고 행해지는 의식적인 행위가 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취하다보면 의식세계와 본래세계 사이의 벽이 차츰 무너지다가 결국 모두 허물어지고 만다. 이렇게 되는 것이 주역을 읽는 최종 목적이다.
<출처: 「하늘의 뜻을 묻다」, 이기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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