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 - 현대인들에게 주역은 어떤 의미인가?

1. 주역은 지혜의 보고이다.

- 주역의 괘사卦辭와 효사爻 辭는 살아가면서 직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주역 64괘 384효는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사람이 384개 효를 모두 휑하게 꿰뚫고 있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반영하여 최고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주역 64괘의 어느 효에 속하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점이다. 점이라는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을 알고 그 상황에서 처할 수 있는 지혜를 읽고 받아들이면 된다.

 

2. 주역은 역할론이다.

- 주역이 지혜의 보고라면 그 지혜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자신이 처한 때와 장소에서 취해야 하는 마땅한 일과 역할을 말한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가야 하는 시간적 존재이기도 하고, 남과의 공간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하다. 시간적 존재로서 본다면 자랄 때 자라야 하고, 늙을 때 늙어야 한다. 공간적 존재로 보면 남을 이끌어야 할 상황에서는 이끌어야 하고, 양보해야 할 상황에서는 양보해야 한다. 이 둘은 대개 융합되어 동시에 나타나기에, 삶의 지혜는 시간적 상황과 공간적 상황에서 하나로 융합되어 나타나는 최적의 지혜여야 한다. 주역에서 제시하는 지혜는 바로 이러한 지혜이다. 주역의 이러한 지혜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자신을 최적의 상태로 적용시키는 지혜이다. 그것은 자신의 욕심이나 집착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3. 주역은 수양서이다.

- 주역에서 지시하는 괘사와 효사는 인간이 실천해야 하는 마땅한 진리이자 지혜이다. 진리의 삶은 욕심을 제거했을 때 다가온다. 그러므로 욕심을 완전히 제거하여 진리의 삶을 살게 된 사람에게는 주역이 필요 없다. 그는 스스로 그리고 저절로 진리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심이 진리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은 진리의 삶을 살 수 없다. 이러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주역이다. 주역의 괘를 뽑아본 결과 욕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라는 내용이 나왔을 때, 자신의 욕심(또는 판단)을 버리고 괘사나 효사의 지시를 따른다면 욕심은 더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차츰 사라진다. 그러므로 주역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욕심을 제거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4. 주역은 소인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주역이 효과가 있는 것은 욕심을 버릴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에 한해서이다. 욕심을 버릴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은 군자다. 그러므로 주역은 군자에게만 의미가 있는 책이다. 군자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주역의 괘사나 효사를 취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땅한 지혜를 얻을 뿐만 아니라 욕심을 제거하는 수양의 목적도 달성한다. 그러나 욕심이 많아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소인은 점을 쳐서 주역의 괘사나 효사를 얻었더라도 그 내용을 따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소인에게 주역은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5. 주역은 '다운' 삶을 유도하는 안내자다.

- 주역의 각 괘나 효는 각자의 위치에 해당하는 고유한 존재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차별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차별성만 강조하면 경쟁과 대립의 차원으로 떨어지기 쉽다. 자신과 남을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하면 경쟁심이 발동하여 남보다 자신이 앞서려는 욕심이 발동한다. 그러나 이런 욕심으로 사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한 뿌리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존재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태극이다. 주역을 읽는 목적은 욕심에 좌우되는 삶에서 태극을 따르는 삶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그러한 삶이 '다운' 삶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녀는 자녀다운 삶이 그것이다. 모든 괘나 효는 이러한 주역의 정신을 기준으로 접근할 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출처: 『하늘의 뜻을 묻다』, 이기동 지음>